Deconstructive Mind

Date      27/3 - 3/4, 2018

Place     Recycling Space293, Deajeon, South Korea

Video Performance

Running time 5'40"

Full HD 16:9

Single-channel video

At some point, I have noticed that there were too many burdens. In fact, I already knew that it became more and heavier, but I could not throw it away. I had not been able to dispose of it in a timely manner so that the burdens I made myself could no longer move my body. I went through all my burdens slowly and found that in order to find what I really need. In other words, it was necessary to dig up my ego to sort out the real in which my desires and the desires of the others were entangled. Because the obsession with the burdens easily gave me to the myth of the life created by society, and the self-image made in such a way was distorted and settled in the unconscious. That was the shell around me and was the ideal or false self-image that I want to be recognised by others. It makes friction that occurs when I cannot face my originality but try to meet social needs. When I realise that I have an ego of misunderstanding, I have a chance to face myself. To work on dismantling self-image means to look at me just as I am.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짐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오래전부터 점점 많아지고 갈수록 무거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버릴 수 가 없었다. 급기야는 제때에 처분하지 못한 내가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짐들은 더 이상 나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많은 짐들 사이에는 꼭 필요한 것들과 필요와 상관없이 나를 감추고 꾸며주는 것들도 다수 있었다. 나의 모든 짐들을 천천히 살펴 본 결과 나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의 본 모습을 가리고 꾸미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나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이 뒤엉킨 나의 짐들 사이에서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서 자아를 파헤치는 작업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타인(他人)’이 아닌 ‘타자(他者)’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자크 라캉의 「욕망이론」에서 빌려왔다. 타인은 엄연하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만, 타자는 물리적으로 외부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라캉이 말하는 타자는 자신을 이끄는 타자로서의 무의식을 말하고 있다. 즉, 타자는 나와 다른 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자기 안에서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짐들에 대한 집착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삶의 당위성과 통념에 쉽게 나 자신을 맡겼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 이미지는 왜곡되어 어느새 무의식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두른 껍데기였고, 그것은 타인이 바라봐주길 원하는 이상적인 혹은 허위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들은 사회에서 통용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적당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나라는 인간의 왜곡된 범주를 만들어 나와 같지 않으면 배척하는 타인을 비난하면서도 사회에 속하고 싶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내가 만들어 놓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실체로 인정하고 그것을 붙잡고 옥신각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 할 때 생겨나는 마찰이다. 사람은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이 허상임을 알았을 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오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과 마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자아를 해체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본래의 나의 모습,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작업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상처투성이가 된 자기 자신일까? 아니면 해방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