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내가 입던 옷은 조각을 내어버렸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나는 의도적으로 옷을 구입했다. 현지에 동화되어 지난 시간의 나의 모습을 잊고 싶다는 심리적 표출이기도 하다. 마음과 신체의 표현이 때로는 나를 진짜 현지인으로 또는 내가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사람으로 착각하게도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인종임에도 불구하고...그것은 적절한 위장행위였다. ‘나’라는 인간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이동 중에 구입한 옷들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나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때로는 나를 숨겨주고 안락하게 해주며, 때로는 타인에게 나를 대상으로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그 사건들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기도 한다. 나는 때로는 혼동스럽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나인지 아니면 사건인지.
이제까지 나를 이동하게 만든 것은 사건이 유발한 결과라고 나는 결론 내렸다. 그것은 그 사건에 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그 사건을 인식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그 대상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나, 즉 나의 몸은 인격의 주체이면서 각각의 독립된 신체구조로 구성된 존재이다.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몸은 타자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움직일 때도 움직임을 제지당했을 때도 타자의 의지는 곳곳에서 실력을 행사한다. 마치 이 몸이 독립적 주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나의 몸은 나에게 있는 모든 옷을 입고 있다. 그 옷은 우리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관습의 층이다.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 옷의 무게는 나의 몸을 움직이기 어렵게 만든다. 이제 겨우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옷을 하나씩 벗어던진다. 그것은 또 다른 길을 만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옷이 만든 길을 따라간다. 그렇게 나는 사회의 관습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다. 나는 그것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이 반복되는 행위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고통의 연속. 그것은 현생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윤회이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윤회의 수레바퀴 안을 도는 것을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 안은 텅 비어있다. 마치 나 라고 하는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는 나의 마지막 남은 껍데기를 벗어던진다.
「Who moves my body」Live Performance. CICA Museum. NY,USA